설계란 무엇인가?

설계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실 속에 태어나게 하는 사고의 기술이다.

그것은 단순히 선을 긋고 형상을 정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 것인지, 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지, 누가 만들어도 같은 의미로 재현되게 하려면 무엇을 고정하고 무엇을 허용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일이다.

1. 핵심 정의

설계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현실의 생산 체계 안에서 재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의도, 조건, 구조, 형상, 관계, 허용 변동, 검증 기준을 명시하는 행위이다.

설계는 단순히 그리는 일이 아니다. 설계는 인간의 의도를 물질 세계가 실행할 수 있는 규칙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러므로 설계에는 항상 세 가지 층위가 있다.

(1) 의도: 무엇을 만들고 왜 만드는가.

(2) 구조: 어떤 원리와 관계로 성립하는가.

(3) 정의: 누가 만들어도 같은 의미로 재현되도록 무엇을 고정하고 무엇을 허용하는가.

도면은 이 중 세 번째 층위, 즉 정의를 전달하기 위한 역사적 매체이다. 도면은 설계 그 자체가 아니라 설계 의도를 생산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표현 방식이다.

2. 말의 유래: design은 그리기와 의도를 동시에 품은 말이다

영어 design은 라틴어 designare 계열에서 온 말로, 표시하다, 지시하다, 지정하다, 윤곽을 잡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어원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설계는 처음부터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무엇을 어떤 의미로 지정하는 행위"였다.

프랑스어 계열에서도 dessin은 그림, dessein은 의도 또는 계획이라는 방향으로 갈라졌다. 즉 서구어의 역사에서도 설계는 한쪽으로는 drawing, 다른 한쪽으로는 intention 또는 plan을 뜻했다.

따라서 설계의 본질은 "그림"과 "의도"의 결합이다. 그림은 보이는 형상을 제공하고, 의도는 그 형상이 왜 그런지를 설명한다. 설계 문서가 단순 도면으로 끝나면 의도가 사라지고, 의도만 있고 형상 정의가 없으면 생산자가 재현할 수 없다.

3. 도면 이전: 장인의 몸에 저장된 설계

산업화 이전의 많은 제작에서는 설계와 생산이 분리되지 않았다. 장인은 머릿속의 형상, 몸에 밴 치수 감각, 도구 사용법, 재료 경험, 도제식 전승을 통해 대상을 만들었다. 이때 설계 지식은 문서가 아니라 사람의 몸과 작업장 관습에 저장되어 있었다.

이 방식은 단일품, 주문품, 지역 장인 체계에서는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생산자가 바뀌거나, 지역이 달라지거나, 같은 물건을 대량으로 반복 생산해야 할 때 문제가 생겼다.

장인의 암묵지는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같은 형태를 여러 사람이 만들려면 의도를 외부화해야 한다.
설계 문서의 역사적 필요는 여기서 시작된다.

> 설계 문서는 개발자의 머릿속 지식과 장인의 손기술 사이에 놓인 번역 장치이다.

4. 초기 도면화: 건축과 토목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도면화는 제품 설계보다 건축, 도시, 토목, 선박, 군사 구조물에서 먼저 강하게 발전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이런 대상은 크고, 복잡하고,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만들며, 만들고 나면 수정 비용이 매우 크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구데아(Gudea) 조각상 중 하나에는 궁전 또는 사원 계획으로 해석되는 평면과 측정 도구가 표현되어 있다. 이는 형상과 치수를 통치, 종교, 건설 행위와 연결한 초기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관개, 피라미드, 도시, 사원 역시 작업자가 공유할 수 있는 기하적 계획과 측량을 필요로 했다.

이 시기의 도면은 오늘날의 정밀 기계 도면과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변화가 이미 일어났다.

(1) 만들 대상이 작업자 외부의 표상으로 분리되었다.

(2) 형상은 말이 아니라 선, 축, 비례, 치수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3) 생산자는 개발자의 의도를 직접 듣지 않아도 어느 정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도면화는 설계 지식을 개인의 몸에서 공동체의 기록으로 옮기는 과정이었다.

5. 르네상스와 원근법: 그리기는 상상과 제작을 잇는 기술이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도면은 단순한 기록에서 예측의 도구로 발전했다. 건축가, 화가, 수학자, 군사 기술자는 원근법, 비례, 투영, 절단면, 기하 작도를 통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대상을 눈앞에 있는 것처럼 검토했다.

이 시기 도면의 의미는 세 가지로 확장되었다.

(1) 설계자는 완성 전의 대상을 미리 볼 수 있게 되었다.

(2) 생산자는 도면을 통해 제작 절차를 추론할 수 있게 되었다.

(3) 발주자와 권력자는 도면을 통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승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설계는 단순 제작 기술이 아니라 "미래 상태를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행위"가 되었다. 도면은 기술 문서이면서 동시에 계약 문서, 설득 문서, 권한 문서가 되었다.

6. 몽주의 기술도법: 3차원을 2차원으로 엄격하게 번역하다

근대 기술 도면의 핵심 전환점은 가스파르 몽주(Gaspard Monge)의 기술도법(descriptive geometry)이다.

기술도법은 3차원 대상을 2차원 평면 위에 일정한 투영 규칙으로 표현하는 체계이다. 이것은 오늘날 정투상도, 다면도, 제도 교육, 기계 도면의 기반이 되었다.

몽주의 공헌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이 아니었다. 그는 공간 형상을 규칙에 따라 변환하면, 직접 보지 않은 사람도 같은 입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수학화했다. 즉 설계 도면은 예술적 그림에서 공학적 변환 규칙으로 바뀌었다.

이 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1) 도면은 개인의 표현이 아니라 표준화된 언어가 되었다.

(2) 3차원 형상은 2차원 평면에서 검증 가능한 정보가 되었다.

(3) 설계자는 생산 현장에 없어도 생산자는 형상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설계 문서는 "개발자 지식을 생산자에게 전달하는 기술 언어"로 자리 잡았다.

7. 산업혁명: 설계와 생산이 분리되면서 문서가 필수가 되었다

산업혁명은 설계의 의미를 크게 바꾸었다. 장인이 한 물건을 끝까지 만드는 방식에서, 여러 작업자가 부품을 나누어 만들고, 다른 장소에서 조립하며, 반복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세 가지 문제를 낳았다.

(1) 누가 만들어도 같은 부품이어야 한다.

(2)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만든 부품이 조립되어야 한다.

(3) 생산자는 설계자의 머릿속 의도를 직접 알 수 없으므로 문서와 규격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산업적 설계 문서는 단순한 형상 그림이 아니라 생산 지시 체계가 되었다. 치수, 재료, 표면, 공차, 열처리, 조립 순서, 검사 기준, 부품표가 도면과 함께 묶이기 시작했다.

이 단계에서 설계의 중심 질문은 "무엇처럼 보이는가"에서 "어떻게 같은 기능을 반복 생산할 수 있는가"로 이동했다.

8. 호환성: 공차 개념이 필요해진 근본 원인

공차(tolerance)는 "오차를 허용한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기능을 유지하면서 생산 변동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공차는 정밀하지 못해서 생긴 타협이 아니라,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든 설계 원리이다.

공차가 필요한 이유는 모든 제조 공정이 변동을 갖기 때문이다. 절삭, 주조, 용접, 성형, 열처리, 조립, 측정에는 항상 편차가 생긴다. 만약 모든 부품이 이론 치수와 완전히 같아야만 조립된다면 양산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아무 변동이나 허용하면 조립과 기능이 무너진다.

따라서 공차는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이다.

> 어느 정도 달라도 같은 부품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호환성(interchangeability)은 이 질문을 산업적으로 만든 개념이다. 한 부품이 같은 종류의 다른 조립체에 별도 맞춤 작업 없이 들어가야 한다면, 설계자는 형상뿐 아니라 허용 변동의 범위까지 정의해야 한다.

호환 부품 체계는 18-19세기 군수품, 시계, 블록 제조, 총기 제조, 재봉틀, 자전거, 자동차 산업을 거치며 발전했다. 지그, 고정구, 게이지, 한계 게이지, 표준 나사, 측정 체계가 함께 발전했다. 공차는 도면 위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 시스템 전체의 통제 방식이었다.

9. GM과 자동차 양산 공차: 정확한 역사적 위치

GM이 공차 개념을 처음 발명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공차와 호환성의 뿌리는 GM 이전의 군수, 시계, 기계공업, 공작기계 산업에 있다. 그러나 GM, 특히 GM이 인수하기 전후의 Cadillac은 자동차 산업에서 정밀 제조와 부품 호환성을 강하게 보여준 대표 사례이다.

Henry M. Leland가 세운 Cadillac은 정밀 가공과 호환 부품을 자동차 산업에 적용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1908년 영국 Royal Automobile Club의 시험에서 Cadillac 자동차 여러 대가 분해되고, 부품이 섞이고, 다시 조립되어 주행 가능한 상태임을 입증했다. 이 사건은 자동차가 장인의 맞춤 조립품에서 정밀 호환 부품의 조립체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Cadillac은 1909년 GM에 인수되었다.

이 사례의 핵심은 "공차 숫자 하나"가 아니다. 핵심은 다음의 산업 조건이다.

(1) 부품은 서로 다른 작업자와 설비에서 만들어진다.

(2) 조립은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3) 수리는 현장에서 교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4) 생산량이 늘면 개별 맞춤 조정은 비용과 병목이 된다.

(5) 따라서 설계자는 기능상 중요한 형상 관계와 허용 변동을 미리 정의해야 한다.

GM식 대량 생산 체계에서 공차는 자동차를 빠르게 많이 만들기 위한 부속 규칙이 아니라, 설계와 생산을 연결하는 핵심 언어가 되었다. 부품 공차, 조립 공차, 게이지, 검사 기준, 공정 능력, 공급망 품질은 하나의 체계로 묶이기 시작했다.

이후 자동차 산업은 단순한 plus/minus 치수에서, datum, 위치도, 형상 공차, 조립 기준, 통계적 공차 분석, 3D tolerance stack-up, dimensional management로 발전했다.

이는 "정확한 치수"보다 "기능하는 관계"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10. GD&T: 형상을 그리는 것에서 기능 관계를 정의하는 것으로

기하공차(GD&T)는 치수와 공차를 단순 길이 오차가 아니라 형상, 자세, 위치, 흔들림, 기준면, 기준축, 조립 관계로 표현하는 언어이다. ASME Y14.5는 GD&T의 대표 표준이며, ASME는 이 표준이 engineering drawings, digital data files, related documents에서 GD&T 요구사항을 명시하고 해석하기 위한 규칙과 기호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GD&T의 철학은 다음과 같다.

(1) 형상은 이론적으로 완전한 기준을 갖는다.

(2) 실제 부품은 그 기준에서 허용된 범위 안에서 달라질 수 있다.

(3) 허용 범위는 제조 편의가 아니라 기능, 조립, 검사 기준에 의해 정해야 한다.

(4) 기준 datum은 부품이 실제로 어떻게 잡히고, 조립되고, 기능하는지를 반영해야 한다.

이것은 설계 문서의 성격을 바꾸었다. 과거 도면은 "그림과 치수"였다. GD&T 이후의 도면은 "기능 관계와 허용 변동의 규칙"이 되었다. 따라서 설계는 더 이상 형상을 그리는 행위만이 아니다. 설계는 기능이 유지되는 변동 공간을 정의하는 행위가 되었다.

11. CAD와 3D 모델: 도면은 데이터 세트로 이동했다

20세기 후반 CAD의 확산은 설계 표현의 중심을 수작업 도면에서 디지털 모델로 옮겼다. 초기 CAD는 종이 도면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는 도구에 가까웠다. 그러나 3D CAD, PDM, PLM, CAE, CAM이 결합하면서 형상 정의는 단순 그림이 아니라 제품 데이터가 되었다.

ISO 10303, 즉 STEP은 제품 데이터를 특정 CAD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고 교환하고 보존하기 위한 국제 표준 계열이다. STEP은 형상, 제품 구조, 제조 정보, 수명주기 정보를 다루며, AP242는 model-based 3D engineering을 다루는 대표적인 응용 프로토콜로 알려져 있다.

ASME Y14.41은 digital product definition data practices를 다룬다. 이는 제품 정의가 종이 도면이 아니라 디지털 데이터 세트로 작성, 개정, 전달될 수 있음을 제도화한다.

이 변화는 "그리다"의 의미를 바꾸었다.

과거: 형상을 그린다 -> 치수를 적는다 -> 생산자가 해석한다

현재: 3D 형상을 정의한다 -> PMI/GD&T를 연결한다 -> 데이터 세트가 제조/검사/해석으로 전달된다


12. 현재의 설계: drawing 중심에서 model 중심으로

현재 설계는 drawing-centric에서 model-centric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은 다음 용어로 나타난다.

(1) MBD: Model-Based Definition

(2) MBE: Model-Based Enterprise

(3) MBSE: Model-Based Systems Engineering

(4) Digital Thread

(5) Digital Twin

(6) Authoritative Source of Truth

이 흐름의 핵심은 문서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문서를 모델에서 파생되는 산출물로 바꾸는 것이다. 과거에는 도면이 원본이고 모델은 보조였다. 앞으로는 검증된 모델과 데이터 관계가 원본이고, 도면은 필요한 사람을 위한 뷰(view)가 된다.

NASA Systems Engineering Handbook도 설계 해법이 기술 자료 패키지(technical data package)로 발전하며, 초기 개념 스케치나 모델에서 완성 도면, 부품표, 구현/통합 세부정보로 진화한다고 설명한다. ISO/IEC/IEEE 42010도 architecture와 architecture description을 구분한다. 즉 구조 그 자체와 그 구조를 표현한 설명 산출물은 다르다.


13. 앞으로의 방향: 그리는 설계에서 선언하고 검증하는 설계로

형상을 정의하는 방법은 오랫동안 "그리다"의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선을 그리고, 투영을 그리고, 단면을 그리고, 치수를 그리고, 3D 모델을 만들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발전 방향은 단순히 더 잘 그리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설계는 다음 방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13.1 형상에서 제약으로

미래의 설계 정의는 단순한 표면과 솔리드가 아니라 다음을 함께 포함해야 한다.

  • 기능 조건

  • 인터페이스 조건

  • 조립 순서

  • 허용 변동

  • 검사 가능성

  • 제조 공정 능력

  • 사용 중 변형과 마모

  • 재설계 조건

즉 "이렇게 생겼다"보다 "이 관계를 만족해야 한다"가 중요해진다.

13.2 그림에서 의미 데이터로

2D 도면은 사람이 읽는 형식이다. 3D CAD도 많은 경우 사람이 해석한다. 미래의 제품정의는 사람이 읽는 그림을 넘어, 기계가 해석할 수 있는 semantic product definition으로 가야 한다.

예를 들어 구멍은 단순한 원통 형상이 아니라 다음 의미를 가져야 한다.

  • 이 feature는 체결 인터페이스이다.

  • 상대 부품의 datum B와 위치 관계를 갖는다.

  • 허용 위치 변동은 조립성과 세척 접근성을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

  • 검사는 CMM 또는 지정 게이지로 가능해야 한다.

  • 공정 능력이 부족하면 구조군 내부 수정인지 구조군 전환인지 판단해야 한다.

13.3 문서에서 digital thread로

설계 데이터는 요구사항, 구조 선택, 형상 모델, 해석, 공차, 제조, 검사, 사용 데이터, 고장 기록과 연결되어야 한다. 이 연결이 digital thread이다. digital thread가 작동하면 설계 변경은 단순 파일 수정이 아니라 영향 관계의 추적이 된다.

13.4 결과 모델에서 실행 가능한 모델로

다음 단계의 설계 모델은 단지 결과를 저장하는 모델이 아니라, 검증과 재설계를 실행할 수 있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그림을 다시 그리는 설계"가 아니라 "상태를 갱신하고 검증하는 설계"이다.